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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칼럼] 무더위 속 따뜻한 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E·D칼럼] 무더위 속 따뜻한 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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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한국전기연구원 미래전략실 선임연구원

필자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탄소중립 달성에 이바지하겠다는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은 아니다. 여름이 오기 전 미리미리 에어컨을 장만했어야 했으나 바쁘게 살다 보니 시기를 놓친 까닭이다. 덕분에 내년에는 반드시 사전 구매 예약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퇴근 후에는 기록적인 열대야를 몸소 겪고 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여름에도 냉방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에어컨의 위대함에 매일 경탄하는 중이다.

우리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에어컨은 필수 가전제품 반열에 올랐다. 전력거래소의 '주택용 가전기기 보급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9년에는 전국 가구당 0.97대의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서도 에어컨 보유율은 2023년 기준 98%에 달하였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에 실외기는 쉴 틈이 없고, 최대 전력 수요는 나날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눈치를 살피며 몰래 전원 버튼을 눌렀다가 부모님께 꾸중을 들어야만 했던, 거실 한구석 장식용 에어컨은 이제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상술한 조사 결과를 온전히 믿기 힘들 듯하다. 가구당 한 대씩 있어야 할 에어컨이 필자의 집에는 없으니 적어도 한 명은 필자의 몫을 더 가진 셈이다. 서울연구원의 저소득 가구 대상 조사 결과는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하면서도 기분을 씁쓸하게 만든다. 서울 저소득층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는 '19년 기준 0.18대에 불과하였다. 저소득층 가구는 경제적 이유로 에어컨 구매가 힘들거나 에어컨을 설치하더라도 전기요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경제적 빈곤이 '에너지 빈곤(Energy Poverty)'으로 이어지며 무더위를 오롯이 선풍기와 부채에만 의존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인 점은 에너지 빈곤과 관련하여 사회적 논의와 대응이 비교적 일찍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06년 제정된 '에너지법'을 통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부 지원을 의무화하였고, 이에 따라 설립된 한국에너지재단은 '에너지 바우처 사업'과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에너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기, 가스, 석유, 연탄 등의 이용 금액을 보조하고, 벽걸이 에어컨 설치, 단열·창호·바닥 공사, 보일러 교체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폭염의 강도와 기간을 심화시키며 에너지 빈곤층의 여름나기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의 일성에 귀 기울여보자. 그는 우리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국립기상과학원이 2022년 발표한 '남한 상세 기후변화 전망보고서'도 비슷한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지금 수준과 유사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전국 평균 폭염일수가 현재 8.8일에서 이번 세기 중반에는 31.6일, 금세기 말에는 79.5일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과거 끼니가 없어 봄마다 배를 굶주려야 했던 보릿고개와 같이, 머지않은 미래에 에너지 빈곤층은 여름마다 '에어컨 고개'를 겪으며 온열질환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열대야에도 차가운 바람을 쐬며 깊이 잠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전기는 시원할 것이다. 결코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원한 전기를 누릴 수 있다면 즐기되,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도록, 기후변화와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한 번쯤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시원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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